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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VD
[DVD]미술계의 거장들 - 위대한 예술가들 (5disc) (The Great Artists Colle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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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고시

  • 제작사 또는 공급자 : KINO FILM
  • 이용조건, 이용기간 : all 이상 이용가,미디어 재생가능한 플레이어 보유시/제품 훼손전까지
  • 상품 제공 방식 : 출시사에서 제작한 방식의 미디어
  • 최소 시스템 사양, 필수 소프트웨어 : DVD/Blu-Ray/CD 등 구동가능한 플레이어
  • 청약철회 또는 계약의 해제,해지에 따른 효과 : 제품 미개봉에 따른 제품만 반품 가능, 개봉시 전자상거래법으로 인한 반품 불가(복제 가능성)
  • 소비자 상담 관련 전화번호 : 티미디어 (02-706-8383)

PRODUCT DESCRIPTION

Special Feature

Additional information

[구 성]
* DISC 1 -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 지오토 Giotto di Bondone
* DISC 2 - 알프레드 뒤러 Albrecht Durer /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 라파엘 Sanzio raphael
* DISC 3 - 티치아노 Titian Vecellio(Tiziano) / 피테르 브뢰겔 Pieter Brueghel de Oude / 엘 그레코 El Greco
* DISC 4 - 피터르 파우얼 루번스 Pieter Pauwel (Peter Paul) Rubens / 벨라스케스 Velazquez, Diego Rodriguez de Silva / 램브란트 Harmensz van Rijn Rembrandt
* DISC 5 - 요하네스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 터너 Turner, Joseph Mallord William / 빈센트 반 고호 Vincent Van Gogh

:::줄거리
Volume1 : 지오토 (Giotto di Bondone) 1266(~67)~1337. 1. 8 피렌체
14세기 이탈리아의 가장 중요한 화가의 한 사람. 지오토가 그린 프레스코 (1305경~06)
그의 작품들은 1세기 후에 번성한 르네상스 미술양식의 혁신적 요소들을 예시해준다.
지금까지 거의 7세기 동안 지오토는 유럽 회화의 아버지이자 이탈리아의 위대한 거장 중 으뜸으로 찬사받아왔다. 피렌체파 화가 치마부에의 제자로, 아시시, 로마, 파도바, 피렌체, 나폴리 등지의 수많은 예배당을 프레스코와 템페라 패널화로 장식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의 생애와 작품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의 그림들의 진위 여부와 연대 확인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종종 상당히 논란이 심한 것도 있다. 지오토의 생애와 예술적 발전과정의 대부분은 현존 작품들(그중 상당수는 그의 것으로 단정하기가 어려움)과 14세기 후반부터 나오기 시작한 이야기들에 의존하여 추론된 것이다. 지오토의 출생연대는 1266(또는 1267)년이나 1276년으로 추측되고 있는데 10년의 연대차는 그의 초기 발전과정을 평가하는데 근본적으로 중요하며,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교회에 있는 프레스코들이 그의 작품인지 여부를 밝히는데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만약 그것들이 정말로 지오토의 것이라면 그 프레스코들은 그의 중요한 초기작품이 될 것이다.

Volume2 :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1452. 4. 15 ~1519. 5. 2 이탈리아
14세 때 화가·조각가의 공방에 도제로 들어가 미술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고, 30세 때 밀라노의 지배자에게 자천장을 제출하고 밀라노로 나갔다. 자천장에는, 모든 종류의 토목공사·축성병기의 설계 및 제조에 관해 스스로의 다방면의 재능을 열거한 뒤, 평화로운 때에는 회화석조조각 주조 조각의 기술에 능란함을 첨가하였다. 근 20년간의 밀라노체재 뒤, 프랑스군의 밀라노침공을 기회로 밀라노를 떠나 만토바에서 공비의 초상을 그렸고, 베네치아에 들렀다가 피렌체로 되돌아갔다. 1502년의 여름 동안, 체자레보르지아의 군사토목기사로서 로마냐지방에서 일했다. 보르지아의 실각 뒤 피렌체로 되돌아갔는데, 1506년 밀라노 주재의 프랑스총독 샤를당부아즈의 초빙으로 다시 밀라노로 출동, 루이 12세의 궁정화가 겸 기술자로서 6년간 일했다. 그리고 13년, 교황 레오 10세의 아우의 초청으로 로마로 옮겼는데, 16년에는 프랑수아 1세의 초빙으로 향발, 17년에는 앙부아즈왕성 근교 크루성관에 입주한 뒤, 갖가지 연구를 했는데, 그는 여기서 67세로 죽을 때까지 평생을 보냈다.


DISC 2
Volume3 : 알프레드 뒤러 (Albrecht Durer) 1471~1528 독일 뉴른베르크
뒤러를 독일르네상스 회화의 완성자라 부르는 이유는 목판, 동판, 소묘를 비롯하여 수채화, 유채화 등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작품을 남겼으며 회화 작품들에서 수많은 실험과 진보가 관찰되기 때문이다. 두 차례의 이탈리아 여행을 비롯한 해외여행을 다녀오면서 타 지역의 르네상스 작품들을 많이 관찰할 수 있었고 여기에 고딕과 독일 전통요소를 혼합하여 그만의 화풍을 구축한 점은 확실히 대가라고 불릴만하다. 또 그가 이탈리아 여행 중에 그린 수채풍경화는 독일예술이 처음으로 도달한 순수풍경화라고 할 정도다. 그는 이탈리아를 여행 하면서 르네상스와 독일 고딕성향을 접목시켜 북구양식의 인체표현과 합리적 공간표현을 이루어 냈다. 뒤러의 대표작은 <기도하는 손> 이다.

Volume4 : 미켈란젤로 (Michelangelo Buonarroti) 1475.3.6~1564.2.18 이탈리아 카프레세
거장 도메니코 기를란다요의 화실에 들어가 여든아홉 살의 나이로 생애를 마칠 때까지 자신의 삶을 온통 그림, 조각, 건축예술에 바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시를 지음으로써 자신의 예술을 완성한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전기작가 바사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예술작업에 대한 열정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곤 했다. 그는 피렌체 공화정에 봉사했고, 메디치 가를 위해서 또한 로마에서 그에게 수많은 주문을 맡겼던 교황들을 위해서 일했다. 그의 활동무대는 이탈리아였지만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벌써 그의 예술은 복제품을 통해 국경을 넘고 있었다. 산 피에트로대성당의 <피에타> <다비드>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 등이 대표작이다.

Volume5 : 라파엘 (Sanzio raphael) 1483~1520 이탈리아
이탈리아 화가, 건축가로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의 고전적 예술을 완성한 3대 작가 의 한 사람으로 조숙한 천재였으며, 우르비노 지방화가에서 바티칸 교황청 궁정화가까지 최고의 사회적 영예와 세속적 성공을 누린 예술가이다. 초기의 작품은 페루지노의 것과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흡사했으나 <기사의 꿈> <삼 미신>에서 <마리아의 결혼>에로의 발전은 서정적인 스승의 예술을 점차 순화하고 형식미로 통일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1504년 피렌체로 옮겨 1508년까지 4년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암법을 위시해서 바르톨로메오, 미켈란젤로의 조형법도 단시일에 익혔다.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는 <그란듀카의 성모=대공의 성모>등 일련의 우아한 성모 그림과 성가족그림, 초상화 <도니부처>, 그리고 미켈란젤 로의 영향을 나타내는 극적인 <그리스도의 매장>등이 있다.


DISC 3
Volume6 : 티치아노 (Titian Vecellio(Tiziano)) 1488~1576.8.27 북이탈리아 피에베 디 카도레
<피에타>는 티치아노가 사후 매장되기를 원하였던 데이 프라리(Frari) 예배당을 위해 제작하였던 것인데 갑작스러운 흑사병으로 인한 죽음이 미완성으로 남게 하고 말았다. 그의 아들 또한 며칠 후 같은 병으로 죽었는데, 아들의 사망 후 그의 집은 약탈되었으나 거기에 남아있던 것은 미완성의 이 작품이었다고 한다. 티치아노의 사후, 이 미완의 작품은 그의 후계자적 지위에 있던 Palma의 손에 의하여 마무리되어졌다. Palma는 작품을 완성하고는 ‘Titian의 미완의 작( ?을 Palma가 완성하여, 엄숙히 신께 바친다.’ 라는 위와 같은 짤막한 글을 남겼다고 한다. 예수의 죽음은 모든 고통과 슬픔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어, 티치아노는 인간의 최후를 자신의 손을 통하여 표현하려 한 것이다.

Volume7 : 피테르 브뢰겔 (Pieter Brueghel the Elder) 1525~1569 네덜란드
16세기 후반에 있어서 북유럽 최대의 화가로 일컬어지는 그는 농민 생활에서 취재한 소재를 예리한 사실적 수법으로 묘사한 작품을 많이 그려 농부의 브뢰겔이라고도 불리운다. 그의 그림은 17세기의 네덜란드 풍속화와 풍경화에 길을 터놓았다. 그가 태어났을 당시의 네덜란드는 하나의 국가라기 보다는 여러 개의 독립된 주와 도시가 모인 것으로, 각각의 지방과 도시가 그들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문화와 예술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쿡에게, 그 다음에는 히에로니무스 콕의 제자가 되어 그 밑에서 그림공부를 하였다. 그 후 1551년 안트웨르펜의 화가조합에 등록하고, 다음 해 프랑스·이탈리아 등지에 유학하였다.

Volume8 : 엘 그레코 (El Greco) 1541~1614 그리스
그리스 태생의 에스파냐 화가. 17세기 르네상스 말기 에스파냐의 펠리프 2세의 궁중화가였고 당시 메너리즘으로 분류된 그의 화풍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의 화풍은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에는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사후 오랫동안 그의 진가가 묻혀져 있었으나 19세기 이후 재평가되어 P.세잔을 비롯한 많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특히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가 등장하면서 그는 미술사에서 신기원으로 이룬 가장 중요한 작가로 평가되기 시작했다. 대표작으로 <오르가츠 백작의 매장>(1586) <성 마우리티우스의 순교> <그리스도의 세례>를 비롯한 많은 초상화가 있으며, 마드리드의 프라도미술관, 에스코리알궁, 톨레도의 미술관과 여러 교회에 훌륭한 컬렉션이 있다.


DISC 4
Volume9 : 피터르 파우얼 루번스 (Pieter Pauwel Rubens) 1577.6.28~1640.5.30 독일
독일 태생의 벨기에 화가로 17세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힌다. 루번스는 1577년 독일의 베스트팔렌(Westfalen, 오늘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이라 불리는 지방의 지겐(Siegen)이라는 도시에서 태어났다. 약 10살을 전후로 하여 가족이 상업 및 문화 중심지인 고향 안트베르펀으로 이사한 후, 그 곳에서 라틴어를 가르치는 초등학교를 다녔다. 1591년 14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미술 수업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지며, 1598년 루카스 화가조합(Lukasgilde)에 가입되므로서 화가로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디게 되었다. 1600년에 약 2년 간에 걸쳐서 르네상스 문화 예술의 요람인 이탈리아를 두루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혔다.

Volume10 : 벨라스케스 (Velazquez, Diego Rodriguez de Silva) 1599.6.6~1660.8.6 세비야
처음 에레라에게 사사하고, 이어 마니에리스트 화가 파체코에게 사사하였다. 정신적으로도 이 문화도시와 스승 파체고의 영향을 받았으며 뒤에 그의 사위가 되었다. 초기의 작품은 당시의 에스파냐 화가들과 다름없이 카라바조의 영향을 받은 명암법으로 경건한 종교적 주제를 그렸으나 민중의 빈곤한 일상생활에도 관심이 많았다. 대표작으로는 <왕녀 마리아 안나> <왕녀 마르가리타>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1650) 등이 있으며 또 큰 구도의 작품으로는 <브레다성의 항복>(1637)이 유명하다. 그 후 이탈리아에 체류하는 동안 장기간 연찬을 거듭하여 기법상의 혁신이 완성되었다. 만년의 대작 <궁녀들(라스 메니나스)>과 <직녀(
?)들>(57)은 평생의 화업(Z >)을 집약한 것들이다.

Volume11 : 램브란트 (Harmensz van Rijn Rembrandt) 1606~1669 네덜란드 레이덴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라틴어 학교를 거쳐 라틴어 대학에 들어갔으나, 수개월만에 화가를 지망하여 자퇴하였다. 1621년 그곳의 화가 J. 스와넨브르흐에게 사사받고, 이어서 암스테르담에서 P.라스트망에게 배웠다. 32년 외과의사 조합으로부터 위촉받은 “툴르프 박사의 해부”로 호평을 받기 시작했다. 34년 명문의 딸 사스키아 판 오이렌부르흐와 결혼하였으며 당시의 미술세계시장 이라고 할수 있는 암스테르담에서 첫째가는 초상화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그의 화화가 성숙해 짐에 따라 외면적인 유사성보다는 오히려 인간성의 깊이를 그리고자 하는 욕망이 절실해 지면서 종교적 또는 신화적 소재나 자화상의 작품이 많아졌다. 따라서 42년 청신한 화풍의 <야경>을 제작, 발표하였으나 일반인들이 그 예술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하였으며, 더욱이 사랑하는 아내마저 죽자 실망과 곤궁속에 빠졌다.


DISC 5
Volume12 : 요하네스 베르메르 (Johannes Vermeer) 1632.8.31~1675.12.15 네덜란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직업을 계승하였다. 화가로서는 카렐 파브리티위스의 영향을 받았는데, 두 사람 사이에 사제관계가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의 그림은 색조가 아주 뛰어났으며 적·청·황 등의 정묘한 대비로 그린 실내정경은 마치 개인 날 북구의 새벽 대기(??를 생각나게 한다. 맑고, 부드러운 빛과 색깔의 조화로 조용한 정취와 정밀감이 넘친다. 초기의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뚜렷한 대비는 만년이 될수록 완화되었다. 그 밖에 <편지를 읽는 여성>(드레스덴 미술관 소장) <우유를 짜는 하녀>(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소장)·<터번을 쓴 소녀(진주 귀걸이 소녀)>(헤이그 국립미술관 소장)·<레이스를 뜨는 소녀>(루브르 미술관 소장)·<화가의 아틀리에> 등이 있다.

Volume13 : 터너 (Turner, Joseph Mallord William) 1775.4.23~1851.12.19 영국 런던
14세 때부터 로열 아카데미에서 수채화를 배우고, 이듬해 아카데미 연차전( ?에 수채화를 출품하였다. R.윌슨을 비롯하여 17세기 네덜란드의 풍경화가들의 영향을 받았다. 1802년 유럽으로 건너가, 프랑스를 중심으로 풍경화의 소재를 모아 500점이나 되는 스케치를 남겼다. 한편, 이 무렵부터 N.푸생, C.롤랭의 고전주제적 풍경화에 끌려, 특히 구도를 잡는 방식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20년 전후부터는 그의 양식에 변화가 생겨, 자연주의적인 방향에서 벗어나 낭만적 경향으로 기울어졌다. <전함 테메레르:The Fighting Temeraire>(1838) <수장(?/):Peace:Burial at Sea>(1843) <비·증기·속력>(1844) <디에프항> <노럼성과 일출> 등의 대표작은 그의 낭만주의적 완성을 보여준다.

Volume14 : 빈센트 반 고호 (Vincent (Willem) Van Gogh) 1853. 3. 30~1890. 7. 29 네덜란드 쥔데르트
렘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널리 인정받고 있으며, 현대미술사의 표현주의 흐름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 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을 지닌 형태를 통하여 그를 자살까지 몰고간 정신병의 고통을 인상깊게 전달하고 있다. 그의 걸작으로는 수많은 자화상과 〈별이 빛나는 밤〉(1889)이 있다. 그가 예술가로 활동한 기간은 1880~90년의 10년뿐이었고, 처음 4년 동안은 기법을 익히면서 오로지 데생과 수채화에만 전념 했다. 브뤼셀 아카데미에 데생을 공부하러 갔다가 1881년 네덜란드 에텐에 있는 아버지의 목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뒤 자연의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1888년초 파리 교외를 그린 몇 점의 풍경화 및 〈탕기 영감의 초상〉과 〈이젤 앞에 선 자화상〉 같은 걸작에서 반 고호의 후기인상파 양식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되었다.